아침에 눈을 뜨자, 뜨뜻한 바람을 머금은 흐린 하늘이 보였다.
난 우중충한 기분을 어쩌지 못하고, 내내 창밖만 바라보면서 오늘은 뭘 해야할지 생각했다.
결국 회색원피스에 노란 볼레로를 걸치고 무작정 어딘가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이름 모를 절에 도착했다.
내리는 사람은 하나였다.
K군은 약수터의 약수를 마셔야한다고 했고, 나는 대웅전을 구경해야겠다고 우겼다.
결국 K군과 나, 나란히 절로 향했다.
조금 걷자 약수터가 나왔다. 나는 무척 찝찝했지만 K군은 열심히 마셨다.
나는 K군을 버리고 절로 향했다. 갑자기 비가 쏴 내려서 홀딱 젖어버릴 것만 같았다.
절 안에 들어가자 한기가 느껴졌다 . 무척 추웠다.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나는 절 곳곳을 구경했다.
어릴때부터 무척이나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죽 늘어선 하얀 그릇과 그 아래 씌여있는 이름.
K군이 죽은 사람의 뼈를 담아 놓은거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이지. 진심으로 유리를 깨서 모두 다 쓸어내버리고 싶었다. 망가뜨리고 싶었다 . 부셔버리고 싶었다.
어째서인지 그런이유같은건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러고싶으니까.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영정사진이 있었다.
나는 가까이 가서, 만지려고 했지만 K군이 그런 건 함부로 만지는 게 아니라면서 제지하며 밖으로 끌어냈다.
나는 천정에 달려있는 연등을 바라보면서 밖으로 나왔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나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걸었다.
K군이 절에오면 무언가가 감싸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버스에 올라탔다.
" 여행 가고 싶다 "
이어폰에서 크게 울리는 노래 소리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크게 말하는 K군의 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하고 있잖아 "
나 역시 큰 소리로 대꾸했다 .
" 혼자서 "
" 왜 여행을 혼자서 하냐. 적막하게 "
나는 투박하게 대꾸했다.
" 적막하고 무섭긴한데 그냥 그러고 싶어. 넌 애인있으니까 같이 여행가면 되겠다 "
K군이 내 반지를 의식하면서 말했다.
" 안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
" 난 혼자서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지 "
먼 산을 바라보며 대꾸하는 K군의 목소리가 쓸쓸하게 울려퍼졌다.
" 너 그거다 그거 "
나는 하고싶은 말이 있는데 도무지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 역마살 ? "
귀신같이 내가 하고싶은 말을 맞춰냈다.
" 아 맞아. 어떻게 알았어 ? "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씨익 웃엇다. 웃는 옆모습.
" 그냥 알아. 그래서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잖아. 원래 사는데는 여기 인데 툭하면 멀리까지 가선 살다오잖아. "
어느 곳에도 안주할 수 없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닐 수 밖에 없는 운명.
언젠가 이 단어를 알게되는 순간 굉장히 묘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K군에게 그래서 남자도 한 남자한테 안주하지 못하고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는거냐고
묻고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잘 알 것 같기에.
우리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노래소리만 가득 울려퍼졌다.